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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불가 작가들의 'NFT 도전'

2022.06.21
“슈슈슈~슈슈슈슈”

무수한 ‘슈’가 달려간다. 글자의 움직임은 그 자체로 “슈슈슈” 소리를 내는 듯하다. 위로 치솟는 ‘슈’가 아래에서 쫓아오는 ‘슈’와 겹쳐지면서 때로 ‘슛’이 되는 짜릿함도 있다. 미술가 유승호(48)가 처음으로 NFT(대체불가 토큰)아트에 도전한 신작 ‘슈-’(shooo-)다. 오는 23일 NFT마켓플레이스 ‘01etc’통해 공개될 예정인 그의 첫 NFT 작품은 동영상으로 제작됐다. 빈 캔버스 위로 글자 ‘슈’들이 쏟아지듯 등장한 후, 속도감있게 솟구치던 위쪽의 글자들과 후두둑 자유롭게 흘러내리는 아래쪽 글자들이 어느 순간 조화롭게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며 정지 장면을 이룬다. 유승호는 의성어나 의태어 글자를 반복적으로 ‘쓰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풍경과 형상을 ‘그리는’ 것으로 유명한 작가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2000년작 ‘슈’의 경우, 깨알같은 글자들로 전통 산수화를 그리고 있다. 작가는 작품에 대해 “내 작업은 이미지일 수도, 글씨일 수도 있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지난 4월 정식 오픈한 NFT거래소 ‘01etc’는 그간 일반인 대상 콘텐츠 공모전과 캐릭터 ‘클레이다이노’ NFT 경매를 진행했다. 기존 예술계의 작가들과 진행하는 NFT프로젝트는 이번이 처음이다. 기성 작가에게는 NFT에 도전할 색다른 기회를, 구매자들에게는 보다 소장가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려는 의도다. ‘Desire of New Vision’이라는 제목의 이번 기획전에 유승호 외에 김기라, 박승진 작가가 참여해 작품별로 30개 에디션씩 선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2015)에 선정되는 등 국내외 활동이 활발한 김기라(48)는 첫 NFT작품으로 판화 ‘Top Building in the World’를 내놓았다.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손꼽히는 빌딩 대부분이 아시아에 집중돼 있다는 점에서 착안한 동명의 2007년작에 기반을 뒀다. 중국 상하이의 세계금융센터와 동방명주, 타이완의 타이페이101,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등 12개의 초고층타워가 커다란 왕관에 뾰족한 장식처럼 자리잡고 있다. 김 작가는 “높아만 가는 빌딩에 커져만 가는 인간의 욕망이 담겼다”면서 “서양의 금융자본을 받아들인 아시아에 초고층빌딩이 몰렸다는 것은 동양의 정신성이 자본주의에 잠식당하고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흔히 NFT아트로 동영상이나 픽셀아트 제작이 활발한 것과는 ‘반대로’ 판화를 택한 것에 대해 작가는 “요즘 미술가들은 컴퓨터로 그린 일러스트를 판화·벽화·회화에 활용하는데, 옛날 화가들에게는 동판에 새기는 작업이 그 같은 역할이었다”면서 “중세 동판화(engraving) 방식의 판화를 위한 드로잉 기법으로 제작해, 에디션의 근본 개념을 되새기는 동시에 다양성 있는 작품의 시작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비디오아트를 전공한 박승진(38) 작가는 영상작품 2점을 NFT아트로 제작했다. ‘We are NFT’에서는 어디서 본듯한 얼굴이지만 어색한 표정이 역력한 가상인간이 중얼거린다. 그의 작은 속삭임은 NFT로 구매해 헤드폰으로 들어야만 알아들을 수 있다.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햇살 좋은 하늘이 보이는 ‘One Fine Day’는 익숙한 풍경이지만 3D로 제작한 허구의 한 장면이다. 박 작가는 “수많은 이미지에 현혹된 현대인들은 무엇이 ‘본질’인지 ‘허상’인지 불확실한 채로 모사본이 실재를 대신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면서 “도시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대도시의 삶은 차가운 콘크리트와 유리조각에 둘러싸인 ‘만들어진 공원’의 풍경인데도 마치 자연에 있는 듯 착각하고 쉬거나 경치좋다고 감탄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가볍게 즐기고 소유하는 NFT아트에 짐짓 무거운 주제의식을 담은 것에 대해 박 작가는 “예술작품으로 내놓는 것인 이상 짧은 영상이라도 창작자의 의도와 메시지가 담겨야 좋은 창작물이다”고 밝혔다.

출처: 서울경제 조상인 미술전문기자